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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품명품

[스크랩] 진주성과 의기 논개

진주성과 의기 논개  그리고 진주냉면

 

 

영암사지를 출발하여 진주로 향했습니다. 이 계절에 영남지방을 다니지 않아서 그런지 길에 이팝나무 가로수가 많았습니다. 한창 꽃을 피우고 맵시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진주시 진입하면서 주유소에 들러 유명한 진주냉면집을 찾아 보았습니다.

 

"진주냉면 드실라면 잘 왔습니다. 요리, 요리, 조리, 조리 가면 아파트 단지 안에 '하연옥'이란 냉면집이 가장 유명하니 꼭 맛보세요."

 

알려준 대로 하연옥을 찾아 갔습니다. 아파트단지 쪽으로 들어가니 벌써 주차안내를 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   카운터에 가니 손님들이 꽤 북적입니다.

 

"지금은 드실 수 없고요. 한시간 정도 기다려야 됩니다!"

 

황매산 - 영암사지를 거쳐 진주까지 온 길이라 한시간을 기다려 냉면을 먹을 여유가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냉면은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하연옥'이란 이집 꽤 큰 집인데 한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니, 진주 냉면은 모두 하연옥에서 팔리는 모양입니다.

 

 

 

 

2013년 5월 17일 진주성

 

진주성은 야간개장 하는지 알아보지 않았지만 야간조명을 받은 진주성문이 아름답습니다.  진주성 앞에서 저녁을 먹고 바람쐴겸 산책하며 찍었습니다.

 

 

 

2013년 5월 18일 진주성

 

 

아침에 본 진주성은 또 다른 얼굴입니다. 깨끗하게 새로 단장하여 눈부신 햇빛아래서 한껏 자태를 뽑냄니다.  최근 새단장하여 더욱 아름다운 가 봅니다.  어느 블로그에 보았더니 '우리나라 10대 경승에 들어간다', 또 '진주성문은 3대 성문이다.'이런 글이 있기도 하지만 정확히는 모르겠고.

 

 

2013년 5월 18일 진주성

 

성곽 주변까지 이렇게 다음은 것을 보면 진주시에서 엄청 공을 들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 겨울 진주성 남강변에서 '유등축제'를 한다고 했는데 다음에는 시간을 내어야 할 것 같습니다.  구경할 만 할것 같습니다.

 

 

진주성이 이름나기는 역시 '진주대첩과 논개'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내가 옛날 진주성을 찾았을 때도 '의기 논개' 때문이었으니까요.

 

 

 

2013년 5월 18일 진주성

 

 

진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김시민 장군'의 동상입니다. 김시민 장군의 진주대첩은  권율장군의 행주 대첩, 이순신장군의 한산도 대첩과 더불어 임진왜란 3대첩중 하나입니다.

 

1592년 음력 4월 14일 처음으로 부산포에 상륙한 왜군은 다음날 동래부성을 함락시키고 파죽지세로 4월 28일은 신립장군과 조령에서 맞붙게 되었습니다. 달랑 2주만에 입니다. 탄금대에서 신립을 격파한 왜군은 5월 2일 한강변에 진을 치고, 6월 14일은 평양까지 처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진격만을 위한 것이고 후방의 보급로가 차단당하기 시작하자 왜군은 각 지방의 거점을 확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의 하나로  1592년(선조25) 10월 5일날 진주성 전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때 진주성에는 김시민장군이 이끄는 3800명의 조선군이 있었는데 왜병은 나가오카 다다오키를 대장으로 약 2만 명 모였다고 합니다. 우선 진주성의 헤자 노릇을 하는 남강에 대나무 다리를 놓고 공격을 시작하였습니다. 김시민 장군은 성문을 닫고, 대포로 대나무다리를 부수며 결사항전하였습니다. 6일간의 전투끝에 왜군은 많은 사상자를 남기고 퇴각하였습니다. 진주대첩의 일등공신은 김시민 장군이지만 후방을 괴롭힌 의병장 곽재우장군의 역활도 대단하였습니다. 김시민장군은  충무(忠武)라는 시호를 받게 됩니다.

 

 

 

2013년 5월 18일 진주성

 

김시민장군의 동상에서 너머 내려가면 촉석루가 나옵니다. 진주대첩과는 관계없이 세워진 누각으로 안에는 촉석루에서 바라보는 경치를 찬양하는 글귀가 있습니다.

 

 

 

2013년 5월 18일 진주성

 

남강과 어루어진 진주시의 풍광은 지금도 아름답습니다. 특히 촉석루가 있는 부분은 바위로 이루어져서 더 그렇습니다.

 

 

 

 

2013년 5월 18일 진주성

 

 

그래서 누각 안에는 "嶺南第一形勝(영남제일형승) 영남지방 최고의 경치다."라고 자랑하는 글까지 큼지막하게 붙어 있습니다.

 

 

 

2013년 5월 18일 진주성

 

 

 

그리고 촉석루아래 절벽 바위에는 이렇게 많은 시인묵객들이 다녀갔음을 증거하는 석각(石刻)들이 즐비합니다. 물론 지금의 가치관으로 보면 하잘것 없는 '낙서'에 해당하겠지만 그 당시에는 하나의 '풍류'였으니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후손의 도리가 아닐까 합니다.

 

 

 

진주성이 이름나게된 또 하나는 '의기 논개' 때문입니다. 이것은 2차 진주대첩 이야기입니다.

 

 

 

2013년 5월 18일 진주성 촉석루아래 의암은 서너평 넓적바위 입니다. 바위에 난 선을 보면 알겠지만 과거에는 바위가 거의 잠길 듯이 강물이 흘렀는데  오늘 보니 왜 그런지 강물이 쭉 빠져있습니다.   그래서 의암의 멋이 한결 줄었습니다.

 

 

 

 

2차 진주대첩은 1차 진주대첩에서 참패하여 사기를 떨어트렸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93년 6월 '가토 기요마사, 고니시 유키나가, 우키타 히데이'등에게 복수를 하도록 특별명령을 내린데서 시작됩니다.  왜군은 6월 19일 3만 7000명의 병력으로 진주성을 공격하였습니다. 당시 진주성에는 창의사 김천일, 경상우병사 최경회, 충청병사 황진, 사천현감 장윤, 김해부사 이종인  의병장 고종후·이계련·민여운·강희열, 등이 이끈 3,400여명의 병력과 67만 명의 일반민이 있어, 우리 군과 적군의 전투력은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6월 19일 부터 시작된 전투는 22부터 밤낮없이 이뤄졌고 양측의 막대한 희생끝에 29일 진주성은 함락되었습니다. 왜병은 시범을 보이듯이 진주성에 있는 살아있는 생명체 모두를 죽이도록 했다고 합니다.

 

사실 진주성의 혈투는 모두 왜놈들 탓입니다. 1593년 1월에 명나라가 전투에 개입하였습니다. 명은 이여송,송응창등으로 4만명을 이끌고 평양성을 공격하여 탈환하였습니다. 왜군은 불리함을 깨닫고  명나라와 강화회담을 시작하였고, 특히 2월 행주대첩이후에는 왜국으로 퇴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2차 진주대첩은 퇴각하는 왜놈들이 보인 복수극인 것입니다.

 

 

 

2013년 5월 18일 진주성  의암 바위에 새겨진 '의암'이란 글씨.  인조때 '한몽삼'이란 선비가 썼다고 전해진다.

 

 

 

2차 진주성싸움에 승리한 왜놈들이 승리의 기쁨에 취해있을 때 '경상우병사 최경회'의 애인이었던 '논개'는 왜장 '게야무라 로쿠스케'을 끌어안고 남강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논개가 빠진 바위가 당시에는 위암(危巖)라 불렸는데 나중에 의암(義巖)으로 고쳤고 합니다.

 

 

촉석루 옆에는 '의기사'라는 작은 사당이 있습니다.

 

 

 

2013년 5월 18일 진주성

 

 

안에는  이렇게 '논개'의 영정을 모셔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정의 모습이 조금은 낮설었습니다. 영정의 옆을 보니 '윤여환'작으로 되어있습니다. 오래전이지만 그때는 '이당 김은호' 화백이 그린 영정이었습니다.

 

 

 

옛 사진을 찾을 수 없어 인터넷에서 받음

 

 

밤에 인터넷 검색을 해 보았더니  김은호 화백은 친일활동을 한 경력이 있다고  2005년 어느 시민단체에서 이 영정을 떼었다고 합니다. 결국 재판까지 가서 영정은 재 봉안되었지만 진주시와 장수군은 영정을 다시 제작하기로 하여 당시 충남대 교수인 윤여환씨의 작품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나는 미술에 문외한이기에 어느 영정이 어떻다 말은 못합니다. 그러나 이런 일 까지 이슈를 만들어 자기네의 위상을 세우려는 배일 내지는 극일단체들을 이제는 경계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내가 친일파여서가 아닙니다. 이런 사람들은 극단적인 보수로 흐르게 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당 김은호 화백이 나라를 팔아먹은 것도 아니고, 그분의 예술성까지 친일로 매도하는 것은 지나친듯 합니다.

 

 

또 한가지,  이것 때문에 인터넷 검색을 하다 보니 몇개 단체와 문중에서 '논개는 기생이 아니었다.'라는 논지의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나도 익히 듣고 있던 이야기입니다. 그러데, 김은호 화백의 논개영정은 '여염집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새로운 윤여환교수의 논개영정은 '트레머리를 해서 올린 기생'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참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물론 복장이야 고증을 받아서 그렸겠지요. 어떤인물로 고증을 받았는가 문제이지요. 뿐만 아니라 우리가 감(느낌)으로 생각하는 나이가 문제입니다. 열아홉살 꽃다운 나이라고 하기에는 .........

 

 

다음에 진주에 들르게 되면 진주냉면을 꼭 먹도록 계획을 세워야 겟습니다. 정말 진주냉면이 한시간을 기다려 먹을 만 한 맛인지, 아니면 식객의 열풍에 따를 만화의 맛인지 확인하고 알려드리도록 하겟습니다.

 

 

 

 

출처 : 내 삶을 사랑해
글쓴이 : Ducky Lim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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